가나 볼가탕가 볼가바구니 생산지 탐방기
2013년 3월 7일, 인천공항에서 가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가나 볼가탕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바구니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실제로 보고, 볼가바구니 생산자들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멀고 먼 아프리카 가나, 그 먼 거리 때문인지 공정무역 바구니를 수입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요. 현지 사정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상황에서 드디어 가나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도합 20시간정도 되는 거리를 날아간 후, 저녁 늦게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도착했습니다. 기아대책에서 일하고 계시는 Frank Anni 목사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마침 제가 타고 온 비행기에 가나의 유명인사가 타고 있었는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원주민 의상을 입은 한 떼의 가나 사람들이 전통춤을 추며 환영의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빨강, 노랑, 초록, 색색의 화려한 의상과 신나는 북소리에 생각지도 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볼가탕가로 가기 위해서 인근 도시 타말레로 짧은 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건조하고 뜨거운 모래바람이 훅 몰려오더군요. 가나에는 두 계절이 있는데, 11월부터 4월까지는 건기, 5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라고 합니다. 제가 찾아간 때는 마지막 햇살이 기승을 부리는 뜨거운 3월이었고, 그 때문에 보통 아침 일찍이나 늦은 오후에 미팅/조사를 하고 점심에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일정을 이어갔습니다.
볼가탕가는 부르키나파소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볼가탕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기아대책 봉사단원 구승회 선교사님께 듣기로 ‘탕가’ 가 바위를 뜻하는 이곳 말이라고 합니다. 바위가 많은 땅이라 그런지 땅이 척박했고, 특히 건기에는 우물마저 말라버리는 가뭄이 이어지는 지역이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황토빛 지평선과 말라버린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어려운 환경 때문에 젊은층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많이들 도시로 떠나고, 부모님이 누군지 정확히 모르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과 나이든 노인들이 주로 마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볼가탕가 지역개발에 힘쓰고 있는 가나의 NGO인 트레이드 에이드 인터그레이티드TradeAID Intergrated(이하 TAI)의 안내를 받아 바구니를 생산하는 그룹 세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아숭타바, 아미수레, 아사키보인 그룹.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들이네요.
보통 20~30여명의 여성 생산자들이 모여서 바구니를 짜고 있었습니다. 바구니 종류도, 색상도 다양합니다. 그룹을 방문할 때마다 바구니를 짜던 생산자분들은 손길을 멈추고 일어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멀리 한국에서 온 저를 환영해주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아시아에서 온 사람을 처음 보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저를 끊임없이 관찰하더군요.
큰 솥에다가 물을 가득 끓인 후 색색깔의 염료가루를 풀어 넣어 긴 풀을 알록달록하게 염색하는 것부터, 코끼리풀을 반으로 갈라 실처럼 배배 꼬고, 뜨개질을 하듯이 바구니를 엮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 이게 바로 장인의 손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동그란 바구니 하나를 짜는데 3일 동안 꾸준히 공을 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몇 십년간이나 바구니를 짜온 할머니의 손은 굳은살이 박혀서 딱딱했고, 검지와 중지의 지문이 많이 닳아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더 일이 고되었다고 합니다. 모여서 일할 곳이 없어서 각자 집에서 알아서 바구니를 짜서 시장에 팔았고 3일마다 열리는 시장에 가기 위해서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매번 갔다고 합니다. 바구니를 팔러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밥 한 끼 먹고 나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계절에 따라서 변하는 재료 가격과 도매상이 정하는 바구니 가격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TAI가 바구니 판매를 도와준 후로 나아진 점이 어떤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생산자분들이 손을 들고 답해주셨습니다.
“시장까지 왔다갔다하는 경비나 수고로움을 줄이고 주문도 대신 받아주고 직접 바구니를 수거하러 오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바구니 짜기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룹에서 재료를 공동구매하기 때문에 재료를 예전보다 더 저렴하게 재료를 살 수 있습니다.”
“TAI Integrated의 Jonah와 Paul이 시장에 가서 새로운 디자인을 보고 어떻게 그것을 짜는지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외국에서 주문한 새로운 디자인들도 알려주고요. 그런 것들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TAI는 우리한테 센터를 지어주었어요. 예전에 집에서 따로 바구니를 짜다가 모여서 짜니 미묘한 경쟁심도 생겨서 더 열심히 짜고 재미도 있어요. 예전에도 모여서 짠 적이 있었지만 나무 밑에서 짜거나 작은 그늘 밑에서만 짜는 건 센터에서 짜는 것과 비교할 수 없죠.”
TAI는 2010년 캐네디안 피드 더 칠드런(Canadian Feed the Children)과 함께 생산그룹 중 2군데에 생산센터를 지어주었습니다. 추후로도 기금을 모아 더 많은 생산센터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생산센터에서는 바구니 짜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교육장소로 사용하거나 마을 회의를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TAI 사무실에서는 영국에서 온 인터네셔널 시티즌 서비스International Citizen Service 팀이 생산자들의 생활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하고 웹사이트 구축 등 실무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부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조직과 생산자들의 자립을 위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볼가탕가에 있는 여러 날 동안, 직접 시장에 가서 도매로 팔리는 바구니는 어떻게 거래가 되는지, 재료는 얼마에 거래되는지도 직접 알아보고 길에서 바구니를 팔고 있는 생산자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꼭 바구니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도 볼가탕가에서의 삶이 어떤지 걱정이 무엇인지 하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영국 식민지 지배의 영향이 남아있는 탓인지,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날 수 있어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들 일자리가 없고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볼가탕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볼가바구니가 많은 여성들의 지속적인 수입원이 되어 경제가 살아나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젊은 층들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볼가탕가 일정을 마치고 다시 아크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에 픽업을 도와주었던 Frank 목사가 일정 내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크라에 도착한 다음날, 가나에서 가장 큰 공정무역단체인 글로벌 마마스Global Mamas의 샵에 방문했습니다. 글로벌 마마스는 가나 6개 지역에서 여성들이 생산하는 의류와 수공예품등을 미국과 세계 등지로 수출하는 공정무역 단체입니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제품의 태그에는 제품을 생산한 생산자의 이름이 적혀있고, 제품을 사면 어떻게 그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간단한 설명이 쓰여 있었습니다. 글로벌 마마스는 디자인 개발과 마케팅에 힘을 쏟으며 꾸준히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습니다. 샵 매니져인 Renae Adam은 자신들의 제품이 단순히 공정무역 제품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진율을 높게 책정하며 공정무역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기업들과 거래하기보다는 각 나라에 있는 작은 상점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글로벌 마마스의 철학에서 많은 시사점을 느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아크라에 있는 엘미나 성과 초대 대통령 크와메 크루마 기념박물관 등을 방문하며 가나의 식민지 역사와 독립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별’ 로 불려왔던 가나에 발전이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에 둘 다 동의했습니다. 지금까지 가나를 거쳐간 수많은 NGO 단체들이 있는데 원조 계획이 끝나고 단체가 철수하자 그들이 오기 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간 지역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가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지 못했으며 이런 태도가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무역이 줄 수 있는 희망은 지금까지의 원조가 주었던 것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희망일 것입니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 배웅을 해주는 Frank 목사님과 가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음에 가나를 방문했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기를 희망하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가나 볼가탕가 볼가바구니 생산지 탐방기
2013년 3월 7일, 인천공항에서 가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가나 볼가탕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바구니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실제로 보고, 볼가바구니 생산자들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멀고 먼 아프리카 가나, 그 먼 거리 때문인지 공정무역 바구니를 수입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요. 현지 사정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상황에서 드디어 가나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도합 20시간정도 되는 거리를 날아간 후, 저녁 늦게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도착했습니다. 기아대책에서 일하고 계시는 Frank Anni 목사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마침 제가 타고 온 비행기에 가나의 유명인사가 타고 있었는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원주민 의상을 입은 한 떼의 가나 사람들이 전통춤을 추며 환영의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빨강, 노랑, 초록, 색색의 화려한 의상과 신나는 북소리에 생각지도 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볼가탕가로 가기 위해서 인근 도시 타말레로 짧은 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건조하고 뜨거운 모래바람이 훅 몰려오더군요. 가나에는 두 계절이 있는데, 11월부터 4월까지는 건기, 5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라고 합니다. 제가 찾아간 때는 마지막 햇살이 기승을 부리는 뜨거운 3월이었고, 그 때문에 보통 아침 일찍이나 늦은 오후에 미팅/조사를 하고 점심에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일정을 이어갔습니다.
볼가탕가는 부르키나파소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볼가탕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기아대책 봉사단원 구승회 선교사님께 듣기로 ‘탕가’ 가 바위를 뜻하는 이곳 말이라고 합니다. 바위가 많은 땅이라 그런지 땅이 척박했고, 특히 건기에는 우물마저 말라버리는 가뭄이 이어지는 지역이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황토빛 지평선과 말라버린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어려운 환경 때문에 젊은층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많이들 도시로 떠나고, 부모님이 누군지 정확히 모르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과 나이든 노인들이 주로 마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볼가탕가 지역개발에 힘쓰고 있는 가나의 NGO인 트레이드 에이드 인터그레이티드TradeAID Intergrated(이하 TAI)의 안내를 받아 바구니를 생산하는 그룹 세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아숭타바, 아미수레, 아사키보인 그룹.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들이네요.
보통 20~30여명의 여성 생산자들이 모여서 바구니를 짜고 있었습니다. 바구니 종류도, 색상도 다양합니다. 그룹을 방문할 때마다 바구니를 짜던 생산자분들은 손길을 멈추고 일어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멀리 한국에서 온 저를 환영해주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아시아에서 온 사람을 처음 보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저를 끊임없이 관찰하더군요.
큰 솥에다가 물을 가득 끓인 후 색색깔의 염료가루를 풀어 넣어 긴 풀을 알록달록하게 염색하는 것부터, 코끼리풀을 반으로 갈라 실처럼 배배 꼬고, 뜨개질을 하듯이 바구니를 엮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 이게 바로 장인의 손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동그란 바구니 하나를 짜는데 3일 동안 꾸준히 공을 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몇 십년간이나 바구니를 짜온 할머니의 손은 굳은살이 박혀서 딱딱했고, 검지와 중지의 지문이 많이 닳아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더 일이 고되었다고 합니다. 모여서 일할 곳이 없어서 각자 집에서 알아서 바구니를 짜서 시장에 팔았고 3일마다 열리는 시장에 가기 위해서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매번 갔다고 합니다. 바구니를 팔러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밥 한 끼 먹고 나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계절에 따라서 변하는 재료 가격과 도매상이 정하는 바구니 가격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TAI가 바구니 판매를 도와준 후로 나아진 점이 어떤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생산자분들이 손을 들고 답해주셨습니다.
“시장까지 왔다갔다하는 경비나 수고로움을 줄이고 주문도 대신 받아주고 직접 바구니를 수거하러 오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바구니 짜기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룹에서 재료를 공동구매하기 때문에 재료를 예전보다 더 저렴하게 재료를 살 수 있습니다.”
“TAI Integrated의 Jonah와 Paul이 시장에 가서 새로운 디자인을 보고 어떻게 그것을 짜는지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외국에서 주문한 새로운 디자인들도 알려주고요. 그런 것들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TAI는 우리한테 센터를 지어주었어요. 예전에 집에서 따로 바구니를 짜다가 모여서 짜니 미묘한 경쟁심도 생겨서 더 열심히 짜고 재미도 있어요. 예전에도 모여서 짠 적이 있었지만 나무 밑에서 짜거나 작은 그늘 밑에서만 짜는 건 센터에서 짜는 것과 비교할 수 없죠.”
TAI는 2010년 캐네디안 피드 더 칠드런(Canadian Feed the Children)과 함께 생산그룹 중 2군데에 생산센터를 지어주었습니다. 추후로도 기금을 모아 더 많은 생산센터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생산센터에서는 바구니 짜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교육장소로 사용하거나 마을 회의를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TAI 사무실에서는 영국에서 온 인터네셔널 시티즌 서비스International Citizen Service 팀이 생산자들의 생활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하고 웹사이트 구축 등 실무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부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조직과 생산자들의 자립을 위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볼가탕가에 있는 여러 날 동안, 직접 시장에 가서 도매로 팔리는 바구니는 어떻게 거래가 되는지, 재료는 얼마에 거래되는지도 직접 알아보고 길에서 바구니를 팔고 있는 생산자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꼭 바구니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도 볼가탕가에서의 삶이 어떤지 걱정이 무엇인지 하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영국 식민지 지배의 영향이 남아있는 탓인지,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날 수 있어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들 일자리가 없고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볼가탕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볼가바구니가 많은 여성들의 지속적인 수입원이 되어 경제가 살아나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젊은 층들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볼가탕가 일정을 마치고 다시 아크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에 픽업을 도와주었던 Frank 목사가 일정 내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크라에 도착한 다음날, 가나에서 가장 큰 공정무역단체인 글로벌 마마스Global Mamas의 샵에 방문했습니다. 글로벌 마마스는 가나 6개 지역에서 여성들이 생산하는 의류와 수공예품등을 미국과 세계 등지로 수출하는 공정무역 단체입니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제품의 태그에는 제품을 생산한 생산자의 이름이 적혀있고, 제품을 사면 어떻게 그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간단한 설명이 쓰여 있었습니다. 글로벌 마마스는 디자인 개발과 마케팅에 힘을 쏟으며 꾸준히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습니다. 샵 매니져인 Renae Adam은 자신들의 제품이 단순히 공정무역 제품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진율을 높게 책정하며 공정무역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기업들과 거래하기보다는 각 나라에 있는 작은 상점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글로벌 마마스의 철학에서 많은 시사점을 느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아크라에 있는 엘미나 성과 초대 대통령 크와메 크루마 기념박물관 등을 방문하며 가나의 식민지 역사와 독립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별’ 로 불려왔던 가나에 발전이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에 둘 다 동의했습니다. 지금까지 가나를 거쳐간 수많은 NGO 단체들이 있는데 원조 계획이 끝나고 단체가 철수하자 그들이 오기 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간 지역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가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지 못했으며 이런 태도가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무역이 줄 수 있는 희망은 지금까지의 원조가 주었던 것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희망일 것입니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 배웅을 해주는 Frank 목사님과 가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음에 가나를 방문했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기를 희망하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